|
| 칼럼번호 50 |
등록일 : 2003-04-20 오후 9:25:19 |
 |
| 흥부네와 우리집 |
 |
| 글 : 허신영 ()
|
옛날, 그 반쯤 쓰러져가던 내가 살던 초가집에는 해마다 봄이면 찾아오는 손님이 있었다.
마당 모퉁이 우물가에서 나는 물 품는 작두질을 하고, 할머니는 빨래를 하실때면, 그네들은 지지배배지지배배 소리를 내며 마당을 한바퀴 휘이 돌다 빨래줄에 앉아서 시끄럽게 떠들어대곤 했었다.
그네들이 내는 소리는 사실 '지지배배' 하고는 전혀 다르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네들의 목청은 고무꽈리를 혀바닥에 지긋이 누르면 삐져나오는 그런 소리에 더 가까웠다.
제비들은 고무꽈리에 높낮이 음을 만들어 마지막 음절은 꽈리를 힘겹게 눌러주어 내는 저음소리로 마침을 했다.
나는 지금도 제비를 보면 반쯤 기울어진 초가집 마당과, 제비소리를 들으면 어린시절 내가 즐겨 불던 5원짜리 고무꽈리 생각이 난다.
더욱이 이곳 아일랜드에서 아주 드물게나마 제비를 볼 때면 옛 정겨운 친구를 만난 듯 한없이 반갑다.
제비들은 꽈리소리를 내다, 진흙 뭍은 지푸라기를 두세가닥씩 물어와서는 처마밑에 집짓기를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제비집 바로 아래, 나무마루에 신문지를 널찌기 깔아 제비똥을 받아내셨다.
매년 봄이 올 때마다 제비들의 방문은 내게는 잔잔한 설레임이었다.
제비들의 방문은 따뜻한 아지랑이를 몰고왔고 양지바른쪽 졸음을 가져왔다.
무엇보다도, 제비들의 등장은 뒷산 마루터에서 소꿉장난을 본격적으로 할 수 있는 때를 알리는 신호이기도 하였다.
그네들 부부의 집짓기가 끝나면 제비들은 곧 새끼를 낳았다.
서너 마리의 새끼제비들은 어미가 먹이를 물고 올 때마다 노란 주둥이를 있는대로 쫘악 벌리고 어지간히도 시끄럽게 떠들어대곤 했다.
육안으로는 도저히 구분하기 불가능한 복사판 새끼들을 어미는 어떻게 구분하는지 번갈아 가며 먹이를 입안에 넣어주곤 했다.
나는 마루에 앉아 뒷 모가지가 아플때까지 처마밑의 제비집을 올려다보곤 했었다.
그리고 앉아있는 위치로, 어느놈이 좀전에 먹이를 받아먹었는지 기억했다가 여전히 다음 먹이차례에도 또 먹겠다고 아우성치는 것이 무척 얄밉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이미 먹이를 받아먹은 놈은 잠자코 다른 형제에게 양보해야 마땅할텐데
어미는 언제 먹이를 먹을까....새끼들이 없는 곳에서 혼자 먹을까...아니면 새끼들에게 저렇게 다 뺏기고 굶는 것일까....
물론 나는 해마다 이 제비가족을 보며 흥부를 떠올리곤 했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우리집은 초가집이 기울어졌을 정도로 가난하였고, 또 방 두 칸에 일곱 식구가 사는 대가족이었으며, 무엇보다도 우리집 식구들은 모두 착한사람들이었으므로 당연 흥부네 집에 비해 뒤질 바가 없었다.
정말로 제비가 박씨를 물어다 준다면 내가 열심히 물을 주어 키울텐데....
한번은 그 극성스런 제비새끼들이 떠들어대다 정말로 한 마리가 마루에 떨어졌었다.
할아버지가 그 새끼제비를 집어 손바닥에 올려놓으시는 동시에, 난 제비다리가 부러졌는지를 보라고 보채듯 물었다.
별 이상이 없었던지 할아버지는 다시 제비집에 올려주었다.
난 정말로 우리집은 흥부네처럼 박씨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굳게 생각했었다.
식구들이 논밭으로 일을 나가고 언니도 학교에 가고 없어, 그 초가집이 텅 비어 나 혼자 집 지키는 날이면 "제비야! 내년 봄에는 꼭 박씨 한 개만 물어오렴" 하고 되 내인 적도 있었다.
난 어려서부터 갈치를 참 좋아했었다.
지금도 변함이 없지만 갈치는 내가 맛본 가장 맛있는 반찬이었다.
흰밥과 갈치는 내게는 행복이었다.
그때는 쌀과 보리를 섞어 지은 거무튀튀한 밥이었지만 특별한 날이면, 그러니까 명절이나 제삿날, 혹은 귀한 손님이 오는 날이면 흰밥에 갈치는 꼭 상위에 단골처럼 올라오곤 했었다.
명절은 두말할 것도 없지만 난, 또한 그러한 이유로 제삿날을 좋아했다.
제비가 박씨를 가져다 주면 맛있는 갈치를 매일 먹을 수 있을텐데.
얼마전 일이다.
내 생일이라면 그래도 꽃이라도 사 들고 퇴근하던 데이빗이였건만, 퇴근이 없어지고서는 꽃은커녕 별다른 내색조차 없는 것은 내 탓인가.
워낙 내 생일에 내 스스로가 무관심해하는지라.
생일이 며칠 지나고 여행에서 돌아와 부엌에 들어서니 내게 줄 선물이 있다고 눈을 감으란다.
(신혼을 넘은지가 아니 맞이한지가 13 년 째 이건만 포옹하고 뽀뽀라도 해 주려고 눈을 감으라는 건 아닐 테고...)
그리고 씽크대 쪽으로 나를 이끌더니 눈을 떠보란다.
눈을 뜬 내 앞에는 거무스름한 가재 두 마리가 해초들과 함께 엉켜 집게를 벌리고 슬그머니 움직이고 있다.
내가 가재요리를 좋아한다고 그게 내 생일 선물이라고 했다.
향수 선물, 책 선물, 신발선물, CD선물, 옷선물 은 받아봤어도 생일선물로 살아있는 가재 두 마리를 받아보긴 또 처음이다.
하긴 어떤이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여자친구에게 감자 한 봉지를 선물했다고, 그 여자친구가 "결별"을 운운하며 궁시렁 대는 소리는 라디오에서 들어보긴 했었다.
궁색한 크리스마스 선물경험담을 주제로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인색한 어느 아이리쉬 농부 노총각이 새로생긴 여자친구에게 준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했었던 것 같다.
그래도 가재선물은 감자 한봉지에 비해 양반정도가 아니라 비할 바가 못될정도로 고급스럽지 않은가. 그것도 한 마리도 아닌 두 마리씩이나.
대충 밀린 일을 끝내고, 살아있는 그러니까 싱싱할 때 가재를 삶아야했다.
살아있는 생명을 내 손으로 죽이기에는 아직까지 손과 마음이 떨려 못하겠다.
가재를 끓는물에 넣어달라고 데이빗에게 부탁을 하고 그 자리를 일단 피신해 나왔다.
남이 대신 죽여준 생명체는 먹을 수 있으면서, 내 스스로 도살하는 것을 잔인하게 생각한다는 것도 위선이다.
인간이 아닌 다른 개체의 생명체가 이를 본다면 아마도 인간들을 비웃고도 남을 것이다.
여하튼간에,
벌겋게 익은 가재를 밤새 남비에 담아두고보니, 제사전날 전야제를 하는 것 같다.
다음날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고 출장간 아빠는 제외한 체 세 명이 붉은 가재 두 마리를 둘러싸고 앉았다.
가재요리를 먹을 때는, 무기같은 도구가 필요하다.
마땅한 연장을 찾아내지 못해 대신 밀가루 반죽 밀 때 쓰는 방망이를 들이댔다.
단단한 집게다리를 방망이로 뉘어 때리고, 엎어 때리고, 가재 속물이 옷에 튀고, 얼굴에 튀고, 아이들 눈에까지 튀어 눈을 비비는 놈, 얼굴을 훔치는 놈도 있지만 불평은커녕 여전히 만신창이 가재의 닦달에서 눈들을 떼지 못한다.
죽은 가재와 시름을 한참이나 하고 나니, 배고플 때 먹을 음식은 절대 못되는구나 라고 실감할 정도다.
굵은 집게다리를 (겨우) 깨트려서 속살을 꺼내 두 접시에 내놓고.
몸뚱이 살은 비교적 쉽게 발라냈다.
두 녀석은 엄마의 양조절이 공평한가를 상대편 접시와 비교하느라 눈동자가 바삐 돌아간다.
나는 마치, 옛날 가난한집 숭고한 어머니라도 되는것처럼, 가재 머리쪽에 붙은 살을 후벼 파먹고 있는데, 옹골진 살만 먹는 놈들이 엄마는 가재를 통째로 다 먹는다고 궁시렁 댄다.
아니, 나는 왜 이때 갑자기 흥부네 집 생각이 날까.
흥부네가 따로 없다는 생각에, 어린시절 제비들도 생각나고, 노란 주둥이를 쫘악 벌리고 짹짹거리던 새끼제비들과 어미제비, 그네들이 박씨를 행여 물어다주진 않을까 하고 막연한 기다림도 가졌던 기억까지.
옛날 우리집 식구들은 모두 가난하였고, 또 그 식구들은 착한 사람들이었으므로 금은보화와 사르르 입에서 녹는 구운 갈치까지 들어있는 박씨를 받을 자격이 충분히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하지만 녀석들아.
너희들은 제비에게 희망을 가질 자격조건을 상실했단다.
옹골진 속살 다 발라주고, 가재머리 후벼파는 엄마에게 오히려 짹짹거리니 말이다.
그래도 어쩌겠느냐.
니들 입속에 들어가는 가재속살에 내 마음은 불러오는걸....
그 이튿날 나는 하루종일 설사병에 시달렸다.
아무래도 가재머리를 잘못 발라먹은 탓인 것 같다.
가재를 먹고 설사병이 났다는 말에, 녀석들이 내게 하는 말이다.
"우리는 괜찮은데 왜 엄마만 설사병이 났어?"
|
부담 없이 읽어 내릴 수 있는 서정이 담뿍 담긴 글 고맙습니다.
아마도 글쓴이의 유년이 내가 겪었던 환경과도 많이 비슷하기 때문이기도 하구요.
저는 지금은 국제공항이 들어선 영종도에서 열다섯까지의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글에 있는 제비집의 섬세한 묘사에 많은 공감도 하구요. 고무꽈리 불던 계집애들의 흙묻은 입술도 생생합니다.
잠시지만 어린 날을 되돌리기에 충분한 글이었습니다. 머지않은 미래에 베스트셀러를 미리 보는 기분입니다. 저는 이제 다시 현실 속으로 들어갑니다. 문득 궁금하네요. 어린날 내가 몰고다니며 꼴 먹이던 아주 선한 눈을 가졌던 누렁암소는 지금 어느 시공에서 머물고 있을까......................
오늘도 행복하시구요. |
|
윤미화
|
2003-06-25 오후 3:52:55  |
흥부네 이야기와 가재이야기? 허신영아! 미화언니다.
전화로 가재먹은 이야기를 컬럼에 올렸다기에, 가재먹는데 무슨 얘깃거리가 있을까 했더니 역시나 우리의 상상력과는 다르군.
흥부이야기와 가재이야기를 연결시킨 그 절묘함!! 옛날 어린 시절 이야기를 끌어올려서 아이들에게 먹인 가재 이야기로 옮긴 솜씨가 풍부한 감성이 없이는 그렇게 유추할수도 없겠지
가재살 나한번 덜 먹고 자식들에게 준 엄마의 모성애를 그렇게 세련되게 흥부네 제비에 비교할수있다는게 탁월한 능력이다.
정말 허신영이는 글 쓰는 감수성이 타고 났다는걸 이번 글을 통해서 한번더 느꼈다.
이렇게 재미있고 아름다운 글들이 빨리 책으로 활자화되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읽고 즐길수 있었으면 좋겠다.
옛날에 우리 부모들이고 이웃사람들이 하는 얘기가 "집안에 의사한명, 변호사 한명은 있어야 된다"는 말에 요즘같으면 "그기다가 우리집안에 출판업계에 일하는 사람 한사람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자주 든다.
좋은 출판사 만나서, 서점에 허신영의 책이 꼽혀있는날을 기대하며... |
Loading time : 0.016 sec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