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번호 35  등록일 : 2002-04-21 오후 6:42:31

제니 (2)
글 : 허신영 ()

그렇게 제니가 학교를 졸업하고 제니는 영국인 남자를 알게 되었다.
이 영국인은 건달에 실속 없는 히피(Hippie. 기성 사회에 반발하여 몸치장 생활등에 무관심하며 세상을 사랑이 지배한다고 믿는 젊은 세대의 한 사람) 였고 아직 어린 제니는 무분별한 사랑을 했다고 고백한다.

영국으로 건너가 히피건달과 함께 생활하게 된 제니는 학교시절 "다시는 남으로부터 짓밟히지 않을 것이다" 라는 맹세를 점점 잃어가기 시작했다.
물론 이 무렵 제니의 생활도 히피족과 함께 한 생활이었으니 그렇게 성실한 생활은 아니었으리라 생각된다.
건달은 알코올중독자였고 실업자였으며 또한 강포한 사람이어서 술에 취하면 곧잘 제니를 때리곤 했다한다.
제니는 히피와의 삶에서 매를 맞는것도 치욕스런 일이었지만 늘 먹을것이 없어 때로는 굶어야 했던 것 또한 비참했다고 말한다.
그렇게 제니는 3년이라는 세월을 살았다.
'어떻게 그런 생활을 그것도 남다른 제니가 3년이나 견뎌낼 수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기지만 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은 특히 아직 여물지 못한 여린 나이라면, 그렇게 힘든 환경에 빠질때면 헤어나야 된다는 생각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몸도 마음도 힘들어진다. 매사에 자신이 없으니 감히 새로운 세계를 향해 발돋움한다는 건 상상할 수조차 없어지니까.
3년 동안의 제니는 못난이였고 바보였고 그야말로 죽으라면 죽는시늉도 해 보여야 하는 꼭두각시였다.
쥐도 궁지에 몰리면 문다고 했던가.

제니는 드디어 탈출을 계획했고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제니는 학교시절 다짐했던 "자신 지키기"를 재차 이번에는 더욱더 강렬히 그리고 평생을 두고 스스로에게 맹세했다고 한다.
제니는 그때를 회상하며 얘기할때면 "Never Ever Ever..."라고 주먹을 쥐고 탁자를 두들긴다.

제니의 성격은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변한 것 같다.
그 이후로 제니는 약자가 불이익을 당하는걸 보면 참지 못한다.
나 방안퉁소야 불친절한 은행원을 만나도 집에 와서 괜한 데이빗에게 투덜거릴 테지만 제니는 당당히 맞선다. 이렇게

"무척 피곤하시거나 안좋은 일이 있나보군요! 하지만 당신이 이곳에서 하는 일은 일반인들에게 서비스를 하는 입장으로 있으니 붉어진 얼굴로 사람들을 대한다는 건 사람들에게 공평하지 못해요. 그러니 영 피곤하거나 기분이 언짢다면 차라리 하루 쉬는게 더 낫지 않겠어요?" 라고.

제니는 데릭이라는 영국인을 만나게 되었고 그는 히피건달과는 정 반대인 온순하고 성실하고 겸손한 사람이다.
키가 무척이나 커서 한참이나 올려다봐야 하는 데릭은 무척 가느다랗기까지 하다.
제니와 데릭은 첫눈에 서로에게 반했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사랑을 고백하고 드디어 그 독특한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
데릭의 직업은 "나무의사"이다. 수십년 혹은 100여년이 넘는 나무들을 가지치기를 하거나 자르고 치료하는 일이 그가 하는 일이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제니와 천생연분인 것 같다.

제니와 데릭은 결혼 후, 영국인 대 지주에게 고용이 되었고 그 큰 저택 문간채 에 살았다. 우리집에서 약 15km에 있는 이 자식도 없고 홀아비이자 80이 훨씬 넘은 할아버지 대 지주는 얼마나 부자인지 자가비행기로 점심식사를 프랑스에서 하고 저녁식사는 영국에서 하고 온데나.
그의 정원사만 해도 10여명 넘고 요리사는 프랑스인이고 집사와 기타 부리는 식솔들이 수십명이라 한다.
(나도 수년전 제니가 문간채에 살던때 그 저택을 먼발치에서 본 적이 있었다. 정원이 얼마나 큰지 대문 입구에서 족히 30여분은 걸어야 집이 보일 정도였던 것 같다.)
데릭도 그 중 한 사람으로 집세걱정 전기세걱정 없이 넉넉한 보수를 받으며 편안하게 신혼살림을 살던 어느날 지주와 데릭은 의견대립이 있었다고 한다.
수십년된 나무를 자르라는 지주의 명령이 떨어졌지만 데릭은 저토록 건강하고 아름다운 나무를 별다른 명분없이 그저 보기 귀찮아졌다는 이유로 자른다는 건 옳지 못하다고 거절했다.
하인이 주인말을 거절했다면 더 이상 하인일 수 없을 터.
그렇게 해서 데릭은 일자리를 잃었고 옹골지게 살던 문간채도 내주고 이사를 했다.

우리집 언덕 아래에서 오른쪽 언덕길을 올라 그 첫 번째 왼쪽 작은 오솔길로 접어들면 아담한 돌담집이 나오는데 바로 그 집이 제니의 집이다.
제니의 집은 "제니" 라는 사람의 성격에 그대로 맞아떨어진 그런 집이다.
제니의 집 주위로는 크고 작은 나무를 포함한 아담한 숲으로 둘러싸여 있고 집 부엌에 나아 있는 돌담 중간의 자그마한 네모난 유리창을 톡톡 두들기면 제니가 얼굴을 내민다.

아주 오래된 돌담집을 토대로 데릭은 시간과 돈이 생길때마다 그 위에 한돌 한돌 쌓아올려 드디어 지붕을 올리고 지은 집이다.

제니와 데릭을 반반씩 닮은 두 딸아이를 낳은 제니는 그 작은 집에서 아이들과 옹기종기 콩닥거리며 산다.

그의 집에서 새로운 것을 보기란 여간 힘든게 아니다.
제니네 집의 유일한 전자제품이란 아이들이 태어난 이후, 얼마전에 구입한 세탁기와 주파수를 맞추느라 커다란 다이얼을 돌려야하는 오래된 라디오한대가 아마 전부인 것 같다.
그 라디오는 씽크대가 있는 유리창틀에 항상 놓여있기가 일쑤다.
그 흔한 TV도 없다.
벽난로대신 스토브를 놓았고 그 스토브 위에서 저녁을 짓고 물을 끓인다.
실밥이 터지고 색이 바랜 쿠션 꺼진 소파와 데릭이 통나무를 잘라 만든 앉은뱅이 의자가 스토브 앞에 놓여있으며 다 낡아진 소파 쿠션은 앉은뱅이 의자에 놓여있다.
천장이 높아 사다리를 놓고 위층을 만들어 침실을 그곳에 두었다.
그러니 아래는 부엌겸 거실겸인 셈이다.

제니는 부자가 되는걸 소원하지 않는 사람이다.
삶을 살아가기에 돈이 얼마나 필요하고 중요한가를 모르는 사람은 결코 아니지만 그저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을정도로 삶을 행복하게 즐기며 살 수 있을 정도면 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제니의 먹고사는 비용은 순수히 감자와 빵을 말한다.

제니는 학교라는 기관을 무척이나 반대하는 사람이다.
학교는 자녀를 위한게 아니고 부모를 위한것이라고 말한다.
왜냐면 자녀를 교육시키는건 기관이 아니라 바로 부모가 직접 가르쳐야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다만 그것이 부모에게 힘들고 귀찮고 시간이 없으므로 학교라는 기관에게 맡겨 버리니 결국 그건 부모를 위한 것이라고 한다.

모든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환경에서 각기 다른 성격과 인격의 부모를 두고 태어난다. 그들이 함께 모여 똑같은 수준의 사람이 되게하려 모아놓고 가르친다는 건 이상적이지 못하다고 한다.
또한 제각기 다른 재능과 성격을 갖고 태어났건만 학교에서 천편일률적으로 가르치고 인식시켜 그것을 토대로 테스트하고 그것으로 사람의 지성과 됨됨이까지를 평가한다는 것이 얼마나 모순되었는가 라고 말한다.
왜 "나" 라는 유일한 개인이 다른 많은 대부분의 사람과 비교되어 평가되어야하고 또 그 평균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부진한 사람으로 인식되어야 하는지 라고 잘못을 지적한다.

덧붙여 우리의 삶은 모든 기관에 의해 정해지고 기관을 인생의 목적으로 하다 살다 죽는다 라고 제니는 얘기한다.

제니의 말이다.
'인생을 70으로 잡고 보통 사람이라면 25세 혹은 30세까지 기관(Institute)에서 공부를 한다. 그 이유는 좋은 위치에 높은 소득을 얻으려면 좋은 기관에 입사하여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남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하므로 많은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함이다.
드디어 건물 좋은 기관에 입사하여 최신 컴퓨터 기계앞에 앉는다. 그리고 시계를 보고 하루 퇴근시간을 기다리고 주말을 기다린다. 주말을 기다리고 국가공휴일을 기다리고 휴가를 기다리고 그렇게 쉴날을 기다린다.
좀 더 인생을 즐기며 편히 쉬고 싶지만 쉬고싶을 때 맘대로 쉰다면 좀 더 넓은 집에서, 좀더 빠른 고급승용차를 탈 수 없으니 맘대로 쉴 수도 없다.
집이 크니 벌어진 입도 크고, 성능좋은 승용차는 세금도 기름값도 많이든다. 그러니 더 열심히 돈을 벌어야한다.
그렇게 기관에서 돈을 벌기위해 열심히 일하고, 그렇게 쉬기를 바라고 일하다, 드디어 60세가 다 되어 정년퇴직을 하고 나서 나머지 10여년 정도를 쉬고 인생은 마친다. 인생은 즐기기만 하기에도 너무도 짧은걸 우린 무엇을 위하여 사는가. 기관에서 교육을 받고 기관에 들어가서 평생을 살다 병원이라는 기관에 들어가 죽는 인생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
제니는 그래서 세상의 손에 의해 짜여진 기관을 덧없어 한다.
두말하면 잔소리겠지만 당연 제니는 멋진 고급 승용차를 결코 부러워하지 않는다.
제니의 나이또래인 그 낡은차는 보기만해도 시동이 걸릴까 의문스럽지만 제니는 진심으로 만족해한다.

"제니! 이왕이면 편안하고, 더 안전하고, 편리한 새 승용차로 운전하는 게 당연 더 좋지 않을까? 새 자동차는 운전하기가 훨씬 편해"
라고 나는 슬쩍 떠본다.

제니의 대답이다.
"신영! 우리 그 허름한 집앞에 새 승용차가 놓여있다고 생각해봐 그게 어울리기나 하겠어?"

"그래도 제니! 누가 지금 당장 BMW를 고스란히 선물을 해 줬다고 가정해봐, 더없이 편리하고 좋은 차라고 느껴지면 너도 좋아할거야!"

"그런 차를 누가 선물할 리도 없겠지만 나한텐 정말로 불필요한 물건일 뿐이야. 내 분수에 맞지 않고 어울리지 않는 걸 갖는다는 건 바보 같은 짓일 뿐이라고. 그런차는 절대로 나한테 필요하지가 않아. 오히려 그런 비싼 차 보다는 돈이 있다면 그 돈으로 필요한 물건을 살수있으니 더 유용하겠지, 여행을 떠날수도 있겠고...."

맞는 말이다.
만약 누가 내게 대단히 화려하고 다이아몬드와 금은보석으로 장식된 이브닝 드레스를 선물했다고 하면 그 옷을 선물한 사람은 평생 내게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을 것이다. 그런 옷이 내겐 전혀 쓸모없기 때문이다. 그런 옷을 입을 기회도 없을테고 설령 있다고해도 난 그런 다이아몬드같은 사치품을 좋아하지도 않는다.
내겐, 평상시 입을 수 있는 평범하고 간편한 옷, 김치국물이 떨어져도 맘편하게 세탁기에 쑤셔 넣을 수 있는 옷이 더 필요하듯 제니도 그렇게 맘대로 운전하고 다닐 수 있는 맘편하고 경제적인 차가 더 실용적이라고 생각하는 이유일 터이다.

오늘 오랜만에 제니집에 들렀다.
축축이 비가 내리는 오후, 제니네집을 향한 오솔길을 지나니 제니의 돌담집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닳아져 물빠진, 군데군데 손바느질로 꿰맨 자국이 여실한 홈드레스를 입고있는 제니의 모습도 그곳에 그대로 있었다.
새까만 주전자도 여전히 스토브에서 김을 뿜어대며 그곳에 있었다.
라벤더향의 포프리가 천장에 매달려 은은한 향을 뿜어내는 이 제니네 집 향기도 그곳에 있었다.

그냥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 들러도 변함 없이 늘 그곳에 그 모습 그대로 있어주는 사람들이 주위에 있다는 것'이 말이다.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잘 살아보겠다고 새벽부터 밤까지 전력질주하는 인생, 가끔씩 그 질주의 의미가 무엇인지 본연의 뜻을 잃고 마치 그 전력질주가 목적인양 혼동할 때가 있다.
제니는 그런 인생에게 라벤더 같은 향긋함을 풍겨 숨고르기를 시켜준다.

가끔씩, 어느 명품의 값비싼 향수보다 나는 이런 라벤더 향이 더 향기롭게 느껴질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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