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번호 34  등록일 : 2002-02-20 오후 6:38:30

제니 (1)
글 : 허신영 ()

제니는 내가 이제껏 보아온 사람들 중에 가장 독특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이다.
그녀는 옷차림새부터 우선 남들과 달랐다.

발이 큰 제니는 양말짝을 제대로 갖춰 신어야 한다는 너무나 당연한 생활의 상식(?)을 따르지 않는다. 그래서 제니의 양말은 한쪽 양말이 빨간색이면 다른 한쪽은 검은색인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더구나 그런 양말은 새것이기보다는 엄지 발가락쪽에 구멍이 커다랗게 뚫려있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구멍뚫린 헌 양말, 색이 다른 짝짝이 양말을 신고도 서슴없이 신발을 벗고 우리 집에 들어온다.
제니의 털실 낡은 털모자는 올이 풀려 그녀의 양말처럼 구멍이 커다랗게 나아있고, 그녀가 입은 티셔츠 등에도 구멍 한두개가 뚫려있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었다. 발목까지 닿는 짚시같은 너울너울한 치마를 입고, 하얀 새치가 그녀의 갈색머리와 반반씩이지만 염색이란 단어를 알까 의심스럽다. 더구나 깔끔하게 빗질된 머리는 내가 본 기억 중에는 없다.
내가 이렇게 묘사를 하니 마치 독자들은 제니가 혹 가난하다못해 거지는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할지 모르겠다.

처음 나는, 내 또래의 이웃인 그런 제니를 보고 무척 흥미를 느꼈다.
한창 멋을 부려도 속이 안찰 20대 여자 초반의 나이에, 멋을 안 부리는 정도가 아니라, 구멍 뚫린 낡은 털실 모자와 양말, 다 낡아서 걸레로 사용해도 아깝지 않을 옷을 아무렇지도 않게 입고 있는 제니. 난 정말 이해하기 힘들었고 또한 흥미로운 상대라고 여겼다.

키가 큰 편에 속하는 제니는 그녀의 기호처럼 성격 또한 남다르다.
제니는 형식, 관습이라는 틀에 짜여진 사회구조를 초월한 사람이다.
제니는 어느 누구 앞에서나 굽힘이 없다.
그렇기에 그녀의 행색과 행동에는 그녀가 원하는대로 편한대로 선택하고 또 그렇게 즐기며 누리고 살고있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내 주목을 가장 크게 끌게했던 것은 제니의 결혼사진이었다.
일생에 한번 최고 화려하게 꾸미고, 최고 아름답게 보이고 싶은 결혼식, 그래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손질 안된 곳 없이 가장 호화스럽게 치장한 날이 결혼식 아닌가. 하지만 제니는 왜 결혼식이 가장 화려해야하고 또 그렇게 레이스로 온통 치장된 화려하고 값비싼 드레스를 입고 해야하지? 라고 묻고는 그 관례를 뒤엎는다.
제니의 결혼식 날 그녀의 옷차림은 이러했다.
너울너울한 빛 바랜 짚시 치마, 히피차림에 가까운 외출복도 평상복도 아닌듯한, 모자는 아무런 장식없는 밀짚모자에, 손에는 울긋불긋한 들풀이 작게 쥐어져있었다. 제니의 남편인 데렉 역시 치마가 아니었다는 점만 제니와 달랐을뿐 거의 비슷한 단조롭고 겸손한 옷차림이었다. 행여 나는 이것이 결혼사진일까 싶어 혹 친구의 결혼식에 하객으로 갔다 찍었다는 말을 내 영어 이해력이 부족하여 잘못 알아들은 건 아닌지 재확인했다.

제니를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할 무렵, 어느 날 제니집 뜰 빨랫줄에 널려있는 구멍난 티셔츠를 보고 나는 여차 한 심정으로 제니에게 물었다.
왜 구멍난 티셔츠나 구멍난 모자를 버리지 않고 계속 입는가 라고 말이다.
제니는 비교적 간단하게 대답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물건들에게는 사연과 아름다운 추억들이 있어. 단지 낡았다는 이유로 그런 아름다운 사연과 추억들이 묻어있는 소중한 것들을 버리는 것은 마치 아름다운 추억을 버리는 것처럼 느껴지니까!"

제니와 데랙은 옷뿐만이 아니라 사람들 손에 전해 내려온 손때묻은 낡은 것들을 유난히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소유하고 있는 물건들이 얼마나 오래되었는지를 자랑으로 여긴다.
그래서 제니네집의 자동차는 1967년에 생산된 구형 자동차이다.
내가 태어난 해와 같으니 계산하기 쉽게 무려 35년이나 된 자동차이다.
나는 덜컹거리는 이 자동차에 한번 올라타고 드라이브를 한적이 있었는데 그 덜컹대는 소음 때문에 차속에서의 대화가 불가능할 정도였다.
이 차의 본래색은 빨간색이지만 여기저기 땜질을 한 탓에 검은색과 빨간색이 반반씩 섞여있다. 마치 제니의 양말처럼.

제니랑 얘기할때면 나도 절로 흥이 난다.
그녀의 말과 표현에는 과장과 드라마틱한 액션이 포함되어있다.
제니는 표정으로 이야기한다.
그래서 제니와 만날때는 마치 신나는 영화한편을 보는 것처럼 재미있게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앞에서도 말했거니와 그녀는 관습과 형식에 물들어있지 않은 기성인 같다.
또한 내가 이제껏 보아온 사람 중에 제니처럼 주관과 가치관이 뚜렷한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당당하고 용기있게 자신의 생각을 따끔하게 말할 줄 알지만 때론 돌아서서 소녀처럼 훌쩍거리는 여린 여자이기도 하다.
그토록 기세 당당하고 용기백배한 제니, 그래서 어디서나 굽힘없이 자기주장을 떳떳이 표현할 줄 아는 성격의 제니를 사실 난 조금은 부러워했었다.
그녀의 용기는 예를 들어서 이런 것이다.

어느날 제니는 타운 광장을 지나고 있었다.
십대소년들이 무리지어 한 소년을 구석에 밀고 때리고 있는 모습을 제니는 보게되었다.
그 광장은 사람들 물결로 북적댔지만 아무도 이런 행패를 말리려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제니는 물론 두 번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이 싸움판에 끼어들어 고함을 냅다 질러댔다. 어디서 감히 이런 행패를 부리고 있느냐고 말이다.
십대아이들은 그냥 장난하는 거라고 변명하고는 슬슬 사라졌다고 한다.
제니는 이런 얘기를 하면서 독일 나치에게 유태인들이 죽어나갈 때 누구 한사람이라도 그런 학살을 정죄하고 나섰더라면 그런 홀로코스트는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고도 덧붙인다.
겁이 많은 나는 물론 방관하는 측에 섰을 테지만, 그래서 그렇게 나치에 대응하다가 칼에 찔려 비명횡사할 일이 두렵지 않겠느냐고 하니, 적어도 정의를 위하여 용기있는 행동을 하다 죽는편이 비겁한 편에 서서 사는 것보다 낫겠다고 한다.
어쩜 난 나치보다 제니가 더 무섭게 느껴지기도 하는 순간이기도하다.

그러나 제니가 그렇게 용기백배한 사람이 되기까지는 많은 사연이 있었다고 한다.

나보다 두 살이 더 많은 제니는 부모가 영국인으로서 이곳 아일랜드 워터포드 던모어에 이주하여 살기 시작하였다.
아버지는 어부이고 어머니는 국민학교 교사였다고 한다.
2남1녀의 삼형제 중 둘째인 제니는 유독 영국악센트를 고집하여 지금까지도 영국악센트를 사용하고 있다. 그렇게 제니는 독특해 보이고싶은 사람이기도 한 것 같다.
제니는, 내가 상상하기는 어렵지만, 어렸을때부터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였고 그래서 따돌림을 당하기 일쑤였다고 한다.
그 따돌림은 사립학교의 여고생이 되었을 무렵에도 마찬가지였고 아니 오히려 더 심했었다고 제니는 회고한다.
따라서 제니의 학교생활은 늘 기가 죽었고, 자연 기죽은 제니를 놀리고 따돌리는 것은 그들에겐 더 쉬었을 것이고 더 재미있었을 것인즉 괴로움은 점점 더 심해져갔다고 한다.
그렇게 늘 괴롭힘을 받던 어느날 제니는 생각하였다.
"내가 이유없이 왜 남들로 인해 괴롭힘을 받아야 하는가!
나를 지켜줄 사람은 나밖에 없다.
난 더 이상 기죽은 나로 지내지 않을 것이다.
누구든 나를 이유없이 괴롭히는 자에게는 강력히 맞서, 나를 지킬 것이다."
라고 말이다.

이렇게 마음먹은 날부터 제니는 행동에 옮겼다고 한다.

그 첫 시작은 수업시간중에 있었다. 제니가 선생님 앞에 발표를 하자 한 급우가 말했다.
"네가 뭘 안다고 나서?"
제니의 대답이다
"너! 입닥쳐"
교실안의 학생들은 눈을 휘둥그래 뜨고 제니를 바라보았다.
예상치 않은 반응을 예상치 않은 사람에게 들은 이 불손한 친구는 럭비선수였다 하는데 수업후에 제니에게 따지고 들자 제니는 그를 발로 걷어차서 그 남학생의 선수생활에 지장을 입힐 정도였다고 한다.
그날 이후, 하루는 제니가 당번인 날이었다. 점심시간에 제니는 뜨거운 물주전자를 들고 급우들의 홍차잔에 물을 붓고 있는데 한 남학생 차례에 그가 제니에게 한 말이다.
"XXX 아! 빨리 부어"
제니의 대답이다.
"뭐라고 했니?"
"빨리 부으라고, XXX"
제니는 주저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그 남학생의 팔뚝에서부터 손목까지 뜨거운 물을 부어버렸단다.
제니의 홀로서기 세 번째이자 마지막인 사건이다.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는 제니에게 겁 없는(?) 한 학생이 제니에게 심한 욕지거리를 했다고 한다.
제니는 "뭐라고?" 라고 물었다.
다시 그 친구는 똑같은 욕을 내뱉었다
제니는 다시 "미안하지만 못들었어, 뭐라고?" 라고 했고 이러기를 여러번 되풀이, 최후통첩인 마냥 제니는 "정말 미안하지만 내 귀가 잘 안 들리니 아주 큰 소리로 말해봐" 라고 했다.
이제 고함치듯 제니를 향해 욕지거리를 하던 이 친구에게 제니는 그의 욕이 채 끝나기도 전에 머리통을 그것도 아주 세게 후려갈겼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는 나한테 그런욕 하지마" 라고 도장이라도 찍듯 못을 박은다음 돌아섰다고 하는데 그 이후부터는 아무도 제니를 감히 건드리지 못하였다는 이야기이다.

(2)편에서 계속....

(총 : 12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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