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번호 24  등록일 : 2001-04-20 오후 5:00:59

“모니카를 아시나요”
글 : 허신영 ()

1.
워터포드에서 모니카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시골에 묻혀 지내는 나도, 이웃들도 모니카를 알고 있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은 그렇게 모니카를 알고 있었다. 설령 모니카를 한번도 본 적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이라도 그녀가 어떤 사람이라는 것 정도는 알았고, 한번쯤 모니카를 보고 싶어 했다.

그 정도로 모니카는 유명했다. 그렇다. 작은 타운 워터포드에서 모니카는 팝 스타만큼이나 유명 인사였다. 내가 처음 그녀, 모니카를 보았을 때, 나는 입을 반쯤 벌린 상태였다. 어쩌면 고인 침이 조금 흘러내렸는지도 모르겠다.

▲ 삽화 이재용. ⓒ Georeport
모니카는 키가 컸으며, 그 키에 걸맞게 두둥실 살이 찐 여자였다. 수백 번 먹을 갈고, 그 물로 머리를 감으면 그토록 까만 색이 될까 싶을 정도로 모니카의 머리는 검정 중의 검정이었다. 그리고 그 새까만 머리는 늘 어깨까지 내려와 있었다.

모니카는 수박만한 젖가슴을 겨우 반절만 가린 상의를 입고 있었으며, 굵직한 허리에는 엉덩이만 살짝 덮은 치마가 옹색하게 걸쳐져 있었다. 살집을 비집고 들어있는 치마 허리춤은 보기에도 아플 것만 같았다.

그 치마 밑으로는 나무의 밑동처럼 굵고 튼튼한 다리가, 물고기 잡는 그물 같은 망에 씌워져 있었다. 그 망사 스타킹은 젖가슴을 반만 겨우 가린 윗옷과 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게다가 모니카는 위험해 보일 정도로 높은 하이힐을 신고 있었다. 그 모든 차림새는 까만색으로 통일돼 있었다.

거대한 몸에 그토록 적은 옷감으로 옷을 입을 수 있다는 게 참 신기했다.

모니카의 얼굴은 화장을 했다기보다는, 아예 한 꺼풀 덮어놓은 듯했다. 두 눈 가장자리는 검은 아이라인이 두텁게 그려져 있었고, 입술은 새빨간 색으로 과장되게 강조되어 있었다. 새까만 머리에 하얀 화운데이션으로 덧칠한 얼굴, 거기에 먹물 같은 아이라인과 새빨간 입술은 완벽한 보색 관계였다.

모니카는 이런 차림새로 대낮부터 워터포드 시내를 당당하게 활보했다. 내가 이런 모습의 모니카를 보고 입이 벌어진 이유는 그 동안 이런 차림새를 한번도 본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이곳 조용한 작은 타운 워터포드에서는 더더욱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모니카를 한번도 본 적이 없다고 하는데 나는 세 번씩이나 보았다. 행운(?)이었다. 내가 보았을 때마다 모니카는 같은 옷차림을 하고 있었고, 행복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지나가는 자동차들에서, 특히 남자 운전자들은 모니카를 향해 경적을 울려대곤 했으며 그럴 때마다 모니카는 환한 웃음으로 그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트럭 운전사중에는 특히 모니카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워터포드 공업단지내의 공장들은 외국으로부터 화물을 운송 운반하기에, 적잖은 트럭들이 하루에도 여러 차례 들락거린다. 또한 둑에는 화물선들의 분주한 상거래가 이루어지며 이 때 역시 모니카의 모습이 쉽게 띄었다.

"영국이 어디 있는겨?"라고 묻는 바람에 놀림감이 된 구시

모니카는 휴대폰을 귀에 대고 종알대며 길가를 걷는 게 일이었고, 지나가는 트럭들이 경적을 울려댈 때마다 놓치지 않고 손을 흔들며 웃었다.

그 모니카가 어느날 이곳 시골구석 동네 펍(pub)에 왔다고 한다. 누가 모니카와 동행했을까, 그게 전원의 작은 마을에서 큰 화제 거리였다.

구시라는 늙은 총각이라던가. 전원의 시골동네에서는 옆집에서 아침식사로 무얼 먹었는지도 알 정도이니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노총각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터였다. 하지만 노총각 구시는 좀 더 특별한 이유로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누군가에게 “영국이 어디 있는겨?”라는 질문을 하는 바람에 친구들로부터 놀림감이 되었다. 그 누군가는 구시에게 영국은 워터포드 다리 건너 마을이라고 말해주었단다.
"그것도 모르냐, 멍청하게!”라고 무안을 주기보다는, 다리 건너에 영국이란 동네가 있다고 가르쳐 준 친구들의 유머는 아일랜드 사람들다운 대꾸였다.

물론 수 년 전의 일이었고, 지금까지도 영국이 워터포드 다리 건너에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리라. 그런 구시가 모니카를 데리고 시골 동네 펍에 왔었다는 소식을 듣곤, 사람들은 킬킬대며 구시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웠다.

"구시? 워터포드 다리 건너에 있는 마을이 영국이라고 믿었던 사람? 그가 모니카와 함께 펍에 왔다구? 오 마이 갓!"

2.
지난 주말 오래간만에 저녁 식사 나들이를 했다. 데이빗(필자의 남편)의 친구인 죤 부부와 함께 식사를 하기로 한 것이다.

죤의 아내 마리아는 첫 남편과의 사이에 딸이 하나 있었고, 그 딸이 100일도 되기 전에 교통사고로 사망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현재의 남편 죤을 만났고 죤은 물론 결혼 ‘전과’가 없는 총각이었다.

마리아는 죤과의 사이에서도 딸 셋을 더 낳았다. 사람들은 간혹 볼 때마다 불러오는 마리아의 배를 보며, 마리아와 죤을 ‘Fertile couple’ 이라고 놀렸다. (Fertile은 비옥한, 혹은 다산하는 의 뜻.)

금발머리의 마리아는 지난해부터 노력한 금연에 성공했고, 가느다랗던 몸매는 이제 중년여자의 몸답게 토실토실 살이 오르기 시작해 있었다.

마리아는 순수하고 정직한 여자였고 죤 역시 유머감각이 뛰어난 하지만 깐깐할 정도로 성실한 남자였다. 우리 부부는 가끔씩 마련하는 이 만남을 즐거워했다. 이번의 만남에서도 모니카의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죤은 모니카를 여러 차례 보아 알고 있었지만, 마리아는 그녀를 한번도 본 적이 없었고 말만 들었노라고 말했다. 우리는 마리아를 동굴 속에서 지내온 사람 취급을 했다.

"모니카를 모르다니 넌 그 동안 어디에 있었니?"

식사가 끝나고 펍에 모였고 또 거기서 친구들을 만났다. 그들도 역시 모니카를 알고 있었고 모니카를 이야기했다. 모니카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묘한 흥분과 장난기를 여실히 드러내며 흥을 올렸다. 그럴수록 마리아는 모니카를 보고싶어 했다.

목소리와 억양까지 멋을 부리고 싶어하는 쉬본이 귀여웠다

마리아에게는 쌍둥이 여동생이 있었다. 그 중 하나인 쉬본은 교통사고로 목이 다쳐 후유증을 앓고 있었는데 그날 밤 마침 펍에 나와 있었다.

쉬본은 가느다란 몸매의 매력적인 여자였다. 쌍둥이 자매가 20대 초반이었을 때는 워터포드의 모든 남자들이 그 자매와 데이트 해보는 게 소원이었을 정도로 미인이었다고 한다. 지금도 매력을 간직한 30대의 여자였다.

데이빗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정말 대단한 미인이었다고 하는 말을 의심하지 않는다. 모든 워터포드의 총각들이 한때는 쌍둥이 자매의 열렬한 팬이었었고, 복날 개 혓바닥 늘어지듯 혀를 빼고 다녔다 한다. 그리고 데이빗도 그 중의 하나였다고 하니......

쉬본은 여자 친구들이 많을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스럽고 매력적이었지만, 애써 멋을 부린 그녀의 영어 억양(이런걸 Posh accent라고 한다)이 왠지 그런 느낌을 갖게 했다.

미국 액센트와 영국 액센트를 적당히 배합해서 자신의 독특한 억양을 만들어내는 그녀의 영어는 한껏 멋과 독특함을 부여하려는 듯한 전형적인 ‘포쉬 액센트’였다. 이렇게 멋을 한껏 부리며 단어들을 굴려 말한다면, 어쩜 친구들 사이에서는 잘난 체 하는 아이로 왕따 당할 수도 있겠거니 하는 짐작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외모도 외모지만, 목소리와 억양까지 멋을 부리고 싶어하는 쉬본이 귀여웠다. 처음 소개를 받고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서 나는 미국식 발음에 주파수를 맞춰야 했다. 잠시 갸우뚱 하고 나서 ‘아~미국식으로 발음하려고 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아무튼 재미있는 여성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워터포드에서 가장 유명한 모니카! 그래서 더욱 슬픈 모니카!

나를 둘러싼 여자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로 술잔을 기울였다. 이곳 서양인들 특히 여성들은 몸에 털이 많이 나는 게 고민이기도 하다. 특히 치마를 입어야 할 때는 잔 솜털이 길쭉길쭉 나 있다면 정말 곤란한 일이다.

그래서 여자들은 면도를 하거나 왁스를 바른다. 왁스크림이 발라진 밴드를 다리에 붙이고 30분 정도 지난 후에 확 잡아떼는 것이다. 그렇게 잡아떼면 솜털이 빠져 묻어 나오는데 그 후로 보통 2개월 정도는 털 없이 매끄러운 다리를 가질 수 있다고 하는 이야기를 한다. 어떤 상품의 왁스가 좋은지 지난번 했을 때는 얼마나 아팠는지, 신영이 너는 어떻게 다리 털을 없애는지….

"나는 돈 안들이고 털을 없앤단다. 가스 불에 털을 태우면 깨끗이 없앨 수 있어. 그리고 다시는 재생할 염려가 없으니 한번 해봐."

신체에 대한 콤플렉스는 많지만 팔다리의 털 때문에 고민해본 적이 없었던지라 농담과 함께 웃고 만다. 까르르 웃는 쉬본과 마리아….
”내가 이렇게 생긴 건 다 엄마 때문이야”라고 투정 부리던 철부지 사춘기 시절을 잠시 떠올렸다….

쉬본의 남자 친구는 쉬본보다 훨씬 나이가 많이 들어 보였다.

낙농을 하는 농부라 하는데, 언뜻 보면 그녀의 아버지 또래 같기도 했다. 이 농부는 무척 큰 농장을 가진 갑부라고 한다. 그에게 구제역 때문에 걱정이 많겠다 라고 말을 건네자 간단히 대답한다. "걱정한다고 해결되는 문제인가요!"

농부는 쉬본이 십대 소녀였을 때부터 알고 지냈다고 하는데 쉬본을 늘 사랑해왔으면서도 감히 고백하지 못했다고 한다. 자신의 나이 때문이었을까.

쉬본은 그 동안 여럿의 남자 친구를 사귀었고, 그때마다 농부의 심정은 벙어리 냉가슴 앓듯 했을 터이다. 그들이 알고 지낸 지 근 20여년 만에 남녀로서 데이트를 시작했다.
드디어 귀여운 금발머리 여자를 사랑하는 애인으로 맞이하게 된 농부는 얼마나 행복했을까! 그저 싱글싱글 행복한 웃음을 내내 지어보이며, 귀여운 연인이 하늘에서 별을 따오라면 당장 사다리를 들고 올 것 같은 표정의 중년남자. 그의 미소는 소년의 미소와 다를 바 없었다. 우리는 그걸 ‘사랑’ 이라고 부르던가….

토요일 밤의 시내 주점들은 어지간히 흥청대고 있다.
주점마다 문 앞에 바운서(Bouncer: 덩치 큰 문지기. 주정꾼이나 말썽쟁이들을 톡 튕겨 내친다는 뜻에서 바운서라고 부른다)들이 굳게 문을 지키고 서있다.
술에 취한 어떤 남자가 바텐더에게 시비를 걸자 바운서들이 잽싸게 달려들어 정말 간단히 집어내 문밖으로 던져버리는 모습이 흥미로웠다.

쉬본은 음악에 맞춰 그 가느다란 허리와 통통한 엉덩이로 섹시하게 몸을 흔들어대더니 배가 고프다며 자리를 뜬다. 그 뒤를 재빠르게 따르는 농부에게 꼬리가 있었더라면 마치 사랑하는 주인을 따르는 행복한 강아지의 그것처럼 연신 흔들어댔을 것이다.

오늘밤 모니카는 어디에서 누구와 함께 있을까! 모니카에게도 쉬본의 농부처럼 그녀를 사랑해줄 사람이 있을까! 워터포드에서 가장 유명한 모니카! 그래서 더욱이나 슬픈 모니카!

사람들은 그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워터포드를 혼자서 ‘독점’했으니 수백만 파운드는 벌고 있겠구나…영국 여자라고 하던데…정말 장한 여자 아니야?…쉬운 일이 아닐 텐데…그 추운 날에 강바람 맞으며 그 차림새로 있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이겠어…모니카는 인터넷 홈페이지도 있을 거야…"

워터포드에서는 전무후무했던 모니카 같은 존재를 사람들은 신기해 하고 안쓰러워 했으며, 장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혼자이기 때문에 유명하고, 전혀 색다른 사람이기 때문에 많은 관심을 받는 모니카.

모니카는 지금 어느 거리를 떠돌고 있을까. 나는 모니카가 워터포드에 지금 그대로 남아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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