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번호 21  등록일 : 2001-01-20 오후 4:37:45

나는 이렇게 생각해요 (나 허신영은 에 이어...)
글 : 허신영 ()

칼럼 대신 이번 달은 허 신영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제 사이트가 업데이트 되면서 나에 대한 소개란을 정식으로 만들 생각에 아래와 같은 글을 썼었으나 소개라기보다는 나 개인적인 주관을 쓴 글이 되어버렸고 또한 처음 읽는 이로 하여금 오해의 소지가 많을 것 같아 대강 추가하고 간추려 올려봅니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주관이나 주장이 꼭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절대 아니며 간혹 나는 내가 대처해 나가는 삶의 태도를 스스로 거부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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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남들처럼 화려한 약력도 재능이나 특별한 취미도 없어 결국 소개란에 아무것도 쓸 것이 없는 사람이란 생각에 조금 실망을 했고 며칠 동안 고민도 했다.
하지만 핑계일수도 있겠으나, 소개라는 것이 꼭 화려한 약력이나 취미와 특기로서 내 자신을 내세워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떤 주관과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는 사람인지가 나를 말하기에는 가장 적절한 방법일 것 같아 형식 없이 생각나는 대로 한번 내 생각을 늘어놔 볼까 한다.

한국을 떠나 유럽에 나와 산지 어느새 10년이 넘고 있지만 한국을 이전보다 더 좋아하는 전형적인 한국 여자라고 우선 나를 말해야겠다. 한국이란 나라의 정치 제도와 사회 실상이나 한국 국민성을 다른 나라보다 훨씬 높이 평가해서 한국을 좋아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한국은 내가 태어나고 자란 어머니의 나라이고 나의 부모와 형제를 비롯해 나와 같은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결국 나와 한국은 그동안 너무도 잘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란 이유에서 나는 한국을 사랑한다.

그러나 나는 민족주의자(Nationalist)에 대해서는 조금 다른 의견을 갖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며, 나는 절대 어디에 가서나 "나는 자랑스런 한국인"이란 말을 하기를 꺼려하는 사람이다. 진정한 민족주의란 내가 내 나라를 사랑하므로 상대의 나라도 존중할 줄 아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위에서 말했다시피 한국은 나의 어머니 같은 나라이고 나에게 잘 길들여진 나라이지만, 세상은 더불어 사는 사람들로 구성된 한 사회인 이상 어느 국민이 자랑스럽고 아니고를 따진다는 것이 조금 생소하게만 느껴지기 때문이다. 피부가 검거나 누렇거나 희거나 모든 인간들은 이렇게 생김새가 다르고 국적이 다르지만 바늘에 찔린다면 똑같은 아픔과 상처를 받고 선혈을 흘리는 모두 똑같은 인간이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모국을 사랑하는 마음은 당연한 것이지만 우리나라 밖에는 모르는 좁은 생각을 한다면 자칫 위험한 민족주의에 빠지기 쉽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나는 열성 민족주의자들에게 그다지 호감을 갖지는 않는다. (일제시대에 조국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민족주의자들을 말하는 것이 아님.)

많은 나라에서 현재 전쟁이 일어나고 있고 서로가 서로를 증오하며 잔인한 고문과 함께 서로 죽이기를 꺼리지 않는 원인은 내 나라에서는 내 나라 사람만 살아야 한다는 내 나라 내 국민 최고라는 생각을 하는 원인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역사에서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히틀러 군단 독일의 나치도 The National Socialist Party라는 이름 하의, 독일이라는 나라가 최고이며 독일을 너무도 사랑하는 민족주의자(Extreme Nationalist)들이었다. 북아일랜드의 테러 사건도 역시 각자 자신들의 나라이니 서로 물러나라는 것이 주된 원인이다.
현재 아프리카에서 일어나는 민족 분쟁도, 동유럽 국가의 이민족 타도(Ethnic Cleansing)의 무차별 학살도, 또한 각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인종차별도, 결국 내 나라 사람이 아닌 다른 외국인은 사랑할 수 없다는 좁은 생각의 Nationalist들의 소행이기 때문이다.

나는 동양인으로서 특히 한국인으로서 전형적인 한국인 생김새를 하고 있다는 이유로 가끔씩 사람들은 내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를 묻곤 한다.
내가 어느 나라 사람인가 보다는 내가 어떤 사람인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그런 이유에서 나는 "자랑스런 한국인"이란 말을 덥석 하지 못한다.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여행을 적극 권장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작은 마을에서, 작은 산을 보고, 작은 사람들과 함께, 작은 일을 하며 작게 사는 사람들은 작은 생각밖에는 하지 못하며 그가 믿는 신(God)조차도 작을 수밖에 없다.
많은 것을 보고 체험하여 느끼고 배울수록 남을 이해하고 더불어 살 수 있는 이해심(Tolerate)이 생기게 된다. 하루하루 살아가기도 바쁜 요즘 세상에 생각의 폭을 넓히겠다고 한가하게 여행이나 다닐 팔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바로 이렇게, 여행할만한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없는 사람들을 위해 책이란 것이 있다. 책은
간접 경험이며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가르쳐 주기도 한다.

홍 세화님께서 쓴 글에서 한국인들은 똘레랑스가 없다고 말하며 그 점을 무척 강조했는데 나도 그 분과 동감하는 바이다. 영어로는 톨러런스(Tolerance 이해심)라고 하 는데 한국 사회에서는 이 남을 배려하고 이해하려는 마음보다는 나만 잘살면 된다는 생각이 깊게 뿌리 내려 있는 것 같아 무척 안타깝다.
더구나 양심의 편에 서서 옳게 살려고 하는 사람들은 허덕이고 어려우며 남을 비열하게 짓밟고 일어서는 뻔뻔하고 이기적인 사람들은 큰소리치며 사는 우리 한국 사회의 구조가 내 마음을 무척 어둡게 한다.
나는 이런 사회의 근본적인 원인이 싸움 바닥으로 유명한 국회 의사당과 그 임원들이라고 꼭 생각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권위 의식이라는 잘못된 관념을 태어나서부터 몸에 배워오고 있다. 어린 아이들을 인격으로 대하지 않는 것부터 시작하여 어려서부터 나이로 이루어지는 서열식 사회 구성과 남에게 절대 져서도 맞아서도 안 된다는 내가 최고여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심고 있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내가 학생시절이었을 때, 한국에서 가장 무서워했던 사람은 버스 안내양이었다. 버스 안내양 언니들이 없어진지 오래인 요즘, 한국을 방문하여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사람은 바로 버스 운전사이다. 버스 운전사 전부를 말하는 건 물론 아니지만 많은 버스 운전사들의 난폭 운전에 승객인 나는 얼마나 가슴을 조였는지 모른다.
나는 또한 버스 운전사에게 길을 묻는 것도 무척 삼가며 꼭 물어야 할 때는 온통 긴장과 모험심을 갖고 물어본다.
그리고 나는 이런 광경도 흔히 보았다.
승객이 타기 전에 이 버스가 00동에 가느냐고 묻자 버스기사는 이렇게 대답한다.
"요 유리창 앞에 써있는 것 읽어보면 몰라요? 한글도 못 읽어요?"
조금만 늦게 타거나 내려도 욕을 먹기가 십상이다. 앞에서 걸리적거리는 차가 있거나 비좁은 길을 지날 때 그들의 입에서 쏟아지는 단어들은 험악하기 짝이 없다. 버스에 타서도 자리에 앉기도 전에 버스가 요동을 치며 출발하므로 단단히 다리에 힘을 주고 버팅길 각오를 해야 한다. 그래도 난 버스 타는 걸 좋아했다. 버스 안에는 바로 가장 진솔한 한국인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택시는 버스와는 큰 차이가 있으므로 이렇게까지 모험심과 각오를 하고 올라타야 하지는 않지만 그들 운전사들의 딱딱히 굳은 얼굴과 불친절은 그렇다 치더라도 한결같이 사회를 불신하는 말을 서슴없이 말하며 자신이 택시 기사로 이렇게 힘들게 사는 것은 다 국가와 사회의 부조리이고 책임이라고 불평한다. 나는 그들의 말이 틀렸다고 꼭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들의 그런 생각은 자신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할뿐더러 오히려 자신의 하루를 더욱더 힘들게만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들 버스와 택시 운전사들이 이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이유는 그들의 수준이 낮거나 직업이 천하기 때문이라고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그들이 얼마나 열악 한 환경에서 힘들게 일하는지 직접 이야기해보기도 했으며 그들의 그런 중노동 때문에 얼굴에 웃음이 피어나지 못할뿐더러 아예 보기에도 민망한 험악한 인상을 하고 있 는 거라고 충분히 이해한다.
다만 그들이 알지 못하는 것이 딱 한가지가 있다고 가르쳐 주고 싶다.

그것은 그들의 생각이 짜증에서 멈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똑같은 형편에서 불평할 수도 있고 행복할 수도 있는데 그들은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 불평하는 모습을 앞서간 사람들에게서부터 몸으로 배워왔으며 따라서 불평 외에 달리 생각하는 그 다른 생각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버스가 00동에 갑니까? 라고 물었을 때 "네 갑니다 타세요" 라든가 "이 버스는 가지 않으나 몇 번 버스가 순회하니 그 버스를 타십시오"라고 친절하게 말해줄 수도 있는 것을 그 버스 운전사는 그렇게도 할 수 있다는 걸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친절을 베풀음으로써 얼마나 자신에게 활력소가 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생각을 넓게 가질 필요가 꼭 있다고 본다. 모든 사물과 인간관계를 내 성격과 혹은 내 처지에 비교하며 꿰맞춰 보려할 때 당연히 맞는 것은 하나도 없고 모두 상대에게 잘못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사람을 어디에 기준을 두고 평가하느냐에 따라 많은 차이가 나기 마련이다.
사람 생김새가 각자 다르듯이 우리 개인의 성격도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나와 같지 않다고 해서 그 다른 상대가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얼마나 저지르기 쉬운 실수인가!

이런 이유로 나는, 어떤 사람이던 간에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폐쇄적인 사람이라 할지라도 결코 내가 그들보다 조금이라도 낫다고 생각하는 적은 없다. 왜냐하면 나도 그들과 똑같은 결점을 가진 완전한 모양새를 갖춘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며 그들과 나는 다만 각기 다른 처지에서 세상을 다르게 보고 다르게 느끼는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에서다.

다만 명예롭다거나 돈이 많다거나 학식과 지위와 권력이 높다고 스스로를 자칭하는 아주 거만하고 교만하며 목이 뻣뻣한 건방진 사람들을 나는 무척 백안시하며 업신여 긴다.

나는 또 남에게 잘 보이려는 노력보다는 남을 있는 그대로 잘 보려는 노력에 더 중점을 두기도 한다. 나는 유명인사가 아니므로 그다지 많지 않은 사람들과 인간관계를 맺고 있으나 나를 아는 사람들로부터 호의적으로 혹은 부정적으로 판단을 받기도 한다.
좋은 호평을 받았을 땐 당연히 기분이 좋아지고 우쭐해지기도 하지만, 혹평을 받았을 땐 무척 기분이 상하는 건 감정을 가진 인간인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결국 그것은 내 하루 이틀의 기분을 좌우할 진 모르나 그다지 나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인간관계를 맺고 있는 상대를 있는 그대로 얼마큼 이해하고 받아들이느냐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그것이 내 삶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나 스스로를 위하여 되도록 아름다운 눈을 가지고 인간을 포함한 모든 사물을 보려고 노력한다.

나는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서로가 서로에게 지켜야 할 예의라고 생각한다. 내가 말하는 예의는 몸동작의 형식을 갖추고 나보다 어른이거나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는 허리를 반으로 접어 공손하게 인사하는 그런 예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며 문장 하나하나에 경어를 붙여 써야 하는 그런 예의를 말하는 것도 아니다.
즉 강자에게 굽실거리는 것은 예의가 아니며 이런 사람들은 곧잘 약자에게는 대단히 무례한 경우가 많다,

내가 생각하는 인간관계에서 가장 필요한 진정한 예의란 아주 간단하고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나이나, 지위나, 빈부 지간이나, 성별의 차이를 전혀 따지지 않고 "내가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나도 남에게 대접해주는 것"이 바로 내가 주장하는 진정한 예의이다. 내가 괜찮으니 남도 괜찮겠지 하는 언행으로 상대를 언짢게 할 경우도 물론 있으나 나는 이런 것을 실수라 부른다.
(실수는 누구나 범할 수 있는 일이기에 실수를 책잡는 사람은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또 이 예의를 가장 소중하게 지켜야 할 관계는 바로 "가장 가까운 사이"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는 그런 대로 예의를 지키는 편이나 세월이 흐르며 서로를 잘 알게 된 친한 사이(부부나 가족, 친구)가 되었다고 생각했을 때 함부로 말을 하여 상대방의 기분을 다치게 하는 경우가 많은 것을 볼 수가 있다. 바로 이렇게 예의에 어긋났을 때 친했던 사람들 사이에 싸움이 일어난다.

나는 또 사람들과의 만남을 무척 좋아한다.
사귐이 오래된 사람은 그 편안함에 마음을 터놓을 수 있어 좋고 새로운 친구는 새로운 사람을 알게된 그 신선함을 좋아하므로 나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의 사귐을 즐거 워한다.

그러나 나는 감성적인 사람보다는 이성적인 사람을 훨씬 높이 평가하며 더 호감을 갖는 편견을 갖고 있기도 하다.

감성적인 사람은 무척 정이 많기도 하며 본심에서 우러난 친절을 베풀기를 몹시 즐거워하나 자칫 감성에 의한 판단으로 이해관계가 성립됐을 때 감성적으로만 생각하려 하는 경향이 많다. 이런 사람하고는 의사소통이 거의 불가능하여 답답함을 느낀다.
그러나 이성적인 사람은 감성에 의한 지배보다는 모든 매사를 이성에 의해 생각하고 처리하므로 언제나 변함이 없어 좋다.
나를 포함한 우리 한국인들은 이성보다는 감성에 더 많이 지배받고 있기도 한데 단편적인 예로 전라도 경상도간의 지역 감정이 바로 그것이다.

내가 가장 선호하는 여성상은 강한 여성이다.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밝힐 줄 알고 위에 말한 감성보다는 이성의 지배를 받는 당당한 여성으로서 자신의 권리를 찾을 줄 아는 강하고 현명한 여성이다. 이런 것을 Assertive(한국말로 적당한 단어를 찾기가 힘들다. 당당한 자기 주장?)라고 하는데 나는 이 Assertive에 몹시 약해 치명적이다.

나는 음악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혼자 집에 있으며 음악을 틀어놓고 청소하는 시간이다.
이런 기회는 자주 있지 않으므로 우리집은 그다지 깔끔하지 못하다.

음악은 생활에 활력소가 된다고 생각하며 내가 청소할 때 듣는 음악은 주로 집시킹과 빌리조엘 같은 이가 부른 노래이다. 내가 다림질할 때는 안드레아 보첼리와 모짜르트의 레퀴엠을 들으며, 혼자서 노래가 부르고 싶을 때는 비틀즈의 In my life을 흥얼거리기도 한다. 나는 또 가수 민혜경씨의 노래와 황병기씨의 가야금 소리도 좋아한다.

나는 상실감에 빠져있거나 몹시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는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해소시키려한다.

겨울이면 내가 또 좋아하는 시간 중에 하나로 활활 타오르는 벽난로 가에서 조용한 클라식 음악과 함께 바카디 콬을 옆에 두고 책을 읽는 시간을 즐겨한다.

나는 성격이 급한 단점을 가지고 있어 아이들에게 필요 이상의 잔소리와 윽박질을 하는 모범이 되지 못하는 엄마이기도 하고 털털한 아줌마이기도 하다.

나는 가끔씩 울고 싶어질 때가 있다.
달 밝은 밤에 밤 공기를 쏘이러 부엌문을 열었을 때 정원의 야자수 나무가 달빛을 받아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싸늘하면서도 시원한 그리고 고독한 냄새가 배있는 정원 잔디 위의 크고 작은 나무들과 만났을 때 말로 심지어는 감정으로도 표현이 안 되는 그런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나는 이런 때 이유 없이 울고싶어진다.

나는 계절 중 한국에서는 가을을 가장 좋아하며 이곳 아일랜드에서는 봄을 가장 좋아한다.
한국의 가을에 피는 한들거리는 코스모스들을 무척 좋아하며 이곳 아일랜드에서는 봄을 알리는 노란 수선화를 무척 좋아한다.

나는 가끔씩 결혼하기를 참 잘했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마요네즈 병의 마개가 열리지 않아 낑낑거릴 때와 전기 퓨즈가 나갔을 때 나는 결혼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행복해하는 순간은 김치찌개와 밥, 혹은 라면을 먹을 때이며, 내가 자식 낳기를 잘했다고 생각할 때는 목욕할 때 주미가 때밀이 타올로 내 등을 밀어줄 때이다.

내가 꼭 한번 만나보고 싶은 세상 사람은 모짜르트나 세종대왕이 아니다.
내가 초시간 여행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나의 어린 모습(10살 이전의)의 신영이를 만나고 싶다. 나는 그 아이에게 용기가 될 만한 말을 몇 번이고 해 줄 것이며 그 아이가 하는 말을 겸손한 마음으로 귀기울일 것이다. 촌스럽고 순진하며 몹시 외로운 그 아이의 손을 꼬옥 잡아주고, 그 손에 입맞추고, 또한 난 그 아이에게 예쁜 인형과 함께 현재는 항상 현재에만 머무르지 않는 거라고 말해주고도 싶다.
그리고 사랑한다는 말을 꼭 잊지 않고 말할 것이다.
가끔씩 나는 그 아이가 몹시 그립다,
우린 어쩌면 한번도 만난 적이 없고 또한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우리의 관계가 한없이 마음속에 사무치곤 한다.

나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으면 입을 크게 벌리고 웃는 사람이며, 슬플 땐 끄억끄억 눈물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다. 또한 가끔씩 남편에게 바가지를 긁고, 아이들에게 매일 같은 잔소리를 늘어놓으며, 오늘 저녁 반찬은 무엇을 할까 염려하는 평범한 여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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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준다는 것 또한 예의이며 배려이고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다른 얘기도 아닌, 바로 재미없는 제 이야기를 끝까지 읽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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