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번호 71  등록일 : 2004-10-02 오전 8:14:17

천사의 마음
글 : 허신영 ()



“벌레다”
주미가 작게 소리쳤다.
징그럽게 생긴 지네가 복도를 헤매고 있었다.
항상 아껴쓰라고 잔소리를 달고 사는 내가, 화장실 휴지를 아까운줄 모르고 두툼하게 둘둘 뜯어냈다.
그리고 접어 주미에게 벌레를 잡으라고 말했다.

가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이맘때쯤이면, 거미들이 집안으로 거처를 옮기기 시작하고 거미도 가족의 일원이 되어 함께 지내는 형편이다.
벌레를 징그러워하는 나 이지만, 그래도 거미까지는 봐 줄 수 있겠는데 이 지네는 그냥 돌아다니도록 지켜보기가 여간 힘든게 아니다.

침대에 기어오르기도 한다면, 그래서 내가 잠들엇을때 내 얼굴위에 걸어다니다 귀속으로라도 들어간다면, 난 온갖 상상을 하며 어느 구석으로 숨기전에 어서 잡아버리라고 재촉했다.

옆에 서 있던 죠슈아가 “죽이지 마~ 죽이지 마~” 라고 간청했다.
주미는 꼭 잡으면 죽을까봐 살짝 휴지로 감싸니 이 지네는 다시 빠져나가곤 했다.

“주미야. 어서 잡아서 변기에 넣어” 나는 또 재촉했다.
주미가 여러차례 잡았다가 놓치곤 하자, 난 지켜보다못해 용기를 내어 휴지를 두툼하게 접은 다음 지네를 잡았다.
죠슈아가 여전히 “죽이지 마~” 라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난 죠슈아의 말이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휴지에 잡힌 지네가 빠져나가기 전에 얼릉 나는 화장실 변기에 넣고 물을 사정없이 내렸다.
죠슈아는 나의 모습을 지켜보다 눈물이 그렁해 지더니 나를 원망스럽게 한번 쳐다보고는 침대로 향하였다.
이불속에 몸을 덮은 죠슈아는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다.
“죠슈아. 지네일 뿐이야. 징그럽잖아.”
죠슈아가 화난 표정으로 내게 흥분된 목소리로 소리쳤다.

“엄마. 엄마가 지네라면 어떻겠어? 그래서 휴지에 쌓여져서 변기속에 들어가면 어떻겠어?”
나는 입이 열개라도 할말이 없었다.
너무나 당황스러웠다. 죠슈아가 그런말을 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한데다 정말로 할말이 없었다.
“죠슈아. 미안해. 정말 미안해. 죠슈아 네 말이 맞아. 엄마가 잘못했어. 용서해 주겠니?”
죠슈아는 조금 분이 풀린 듯 고개를 끄덕여보였지만 여전히 울고 있었다.
“죠슈아. 다음에 지네를 보면 밖에서 살도록 내보내 줄게”
죠슈아는 내 목을 끌어안고 볼에 키스를 한 다음 돌아누웠다.
“사랑해! 죠슈아”
“나도 엄마 사랑해”

기분이 묘하다.
지네에게 미안한 것인지, 죠슈아에게 미안한 것인지.....

앞으로는 지네를 잡을땐 죠슈아가 없는데서 조심히 저질러야하나?
죠슈아 말대로 생명의 존엄성을 생각해서 살려줘야 하나?
“엄마가 지네라면...” 이란 말이 귓가에 쟁쟁하니 아무래도 살려주는 쪽을 택해야 할 것 같다.

며칠전 집 현관앞에 까치가 죽어가고 있었다.
가늘게 퍼득대는 모습이 살아날 것 같지 않았다.
죽어가는 까치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없었다.
아니 없을것이라고 단정지어 생각했다.
까치의 죽음도 자연의 현상일테니...
난 한참을 지켜보다 그대로 방치한 체 집안으로 들어왔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고 주미는 곧바로 파득대는 까치를 상자속에 넣어 빵조각을 잘게 뿌셔 넣어주었다.
까치가 빵을 조금 먹었다고 어쩜 살아날지 모른다고 주미는 기뻐했다.
헛간속의 까치는 상자속에서 나와 조금 날다 잔디밭에 떨어져버렸다.
가망이 없어보였다.
주미는 다시 상자속에 넣어주었고 다음날이 되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간 사이에, 나는 슬그머니 헛간에 들어가보았다.
까치는 죽어있었다.
죠슈아가 학교에서 돌아오고 까치의 안부를 물었다.
“죽었어”
죠슈아는 실망한 듯 헛간을 향해 뛰었다.

아침마다 까치를 보면 주미와 죠슈아는 까치에게 손을 흔든다.
“안녕 까치야~”
둘다 까치만 보면 손을 흔들어대는 아이들이 우스워서 물었더니

까치를 보면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해야하고 그렇지않으면 재수없는 일이 생긴다는 것이다.

저녁 식탁에서 죠슈아가 우유를 엎질렀다.
나는 덤벙댄다고 한마디 쏴 주려고 준비중인데,
죠슈아가 먼저 선수를 친다.
“까치한테 손을 안 흔들어 줬던 적이 있었나봐”


(총 : 38 건)
허은혜 2004-10-04 오후 10:06:42 삭제
역시나 언니의 칼럼은 너무도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이글 제가 제 미니홈피에 다가 올려두 될까요? 이렇게 예쁜 이야기 저 혼자만 보기 너무나 아까워요~>_<;;;
제가 생각하기에 아무래도 주미와 죠슈아는 애들이 아닌 것 같아요. 정말 천사같은 아이들이 아니고서는..더욱이 죠슈아는 참..볼때마다 사람을 감탄하게 만드네요. 글을 읽는 동안 죠슈아의 그 큰 눈동자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걸 상상하니 웃다가도 웃음이 쏘옥 들어가버려요. 아이의 마은 정말 진심이자나요.
어릴때 저도 그랬는지 오늘 엄마께 전화해서 물어보아야 겠어요. 언제 그런 순수한 마음이었는지 까마득한 이 기분이 저를 당황스럽게 만드네요.
저도 까치보면 주미와 죠슈아처럼 손을 흔들어 주어야 겠어요. 꼭 해야지~!!! 언니의 예쁜 글, 그리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글 또 기다리고 있을께요~*^__________^*
김영미 2004-10-06 오후 12:21:07 삭제
오늘 처음 들어왔어요. 칼럼을 읽고 잔잔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저도 8세인 딸이 있는데 말표현이 조금 늦어요. 그런데 보는 곤충이나 동물마다 대화를 하는지 아니면 좀 뒤떨어져서 그런지 "엄마, 재가 날 쬐려봐"라든가 "엄마, 나보고 예쁘데..."하는 엉뚱하지만 사랑스런 딸이 있어요. 앞으로 이곳에 자주 들러 예쁜글 봐야 겠네요.
2004-10-16 오전 9:20:33 삭제
너무나 사랑스런 천사들이네요.........맑고 너무 맑아서........저는 주미와 조슈아 앞에 서면...작아질 것 같아요.......
수후 2004-11-24 오후 3:50:03 삭제
오랫만에 들렸는데.. 여긴 들려서 신영님의 칼럼을 보면 마음이 참 따뜻해지고 편해져요~!! 하루를 보내는 동안 이것 저것 짜증나고 스트레스 받고 그럴 때마다 여기 들려서 칼럼을 봅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계속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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