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번호 68  등록일 : 2004-09-04 오전 9:27:28

스크라피의 임신
글 : 허신영 ()

스크라피가 임신을 한 것은 내 책임이라고 한다.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 개 임신이 내 책임이라니...
말도 안되는 소리. 내가 여자였길 망정이지, 남자였더라면 얼굴 붉히고 눈과 목에 핏대 올리며 화를 냈을지도 모를 일이다.

작년 가을에 아이들 생일선물로 강아지 두 마리를 집에 데려왔다.
Jack Russell 이라는 종자의 사냥개이다.
생후 5주 정도가 된 두 놈은 자매지간이었는데, 아이들은 이름리스트를 적어내며 무척이나 흥분해있었다.

‘프로스티’라고 이름지은 녀석은 짜리몽땅한 몸매였고, 스크라피는 날씬한 몸매를 하여 쉽게 구분이 되었다.

스크라피는 아랫이와 윗이가 맞물리지 않고 아랫이가 더 앞으로 튀어나와 입이 다물어지지 못한채 어찌보면 개가 웃고 있는듯도하여 보는사람들로 하여금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다른 애완동물도 마찬가지지만 개를 좋아하지 않는 나는, 이 두녀석들을 늘 시큰둥하니 그야말로 소 닭보듯 본체만체 했었다.

스크라피는 주미가 주인이었고
프로스티는 죠슈아가 주인이었다.

이 두마리 자매는 생긴것도 차이가 있었지만 그 지능에도 차이가 있었다.
스크라피는 영리한 개였지만, 프로스티는 멍청한 개였다.
스크라피는 훈련을 시키면 정말 알아들은 것처럼 따라하는 시늉을 해 보이곤 했지만
프로스티는 아무리 가르쳐도 그저 입벌리고 켁켁거리기만 했다.

프로스티는 멍청하다 하여 집 식구들로부터 구박을 받았지만, 개 주인인 죠슈아는 이럴때마다 눈물을 글썽이며 개 편을 들어주었다.
식구들은 적당히, 죠슈아가 없을때 프로스티의 흉을 볼 수 가 있었다.

영리하여 좀 더 이쁨을 받고있는 스크라피든 멍청하여 늘 눈총을 받는 프로스티든 나는 한번도 쓰다듬어 주는 법이 없었다.
영리한놈은 지를 이뻐하지 않는 쌀쌀한 여 집주인 눈치를 살피며 적당히 거리감을 둘 줄 아는 개였다.
반대로 멍청한 프로스티는 저를 이뻐하는지 미워하는지 아랑곳하지 않고 내가 정원에만 앉아있으면 내 발밑을 파고들거나 앞발을 들어 내 다리위에 앉고싶어했다.
그럴때마다 발로 밀어내거나 손으로 막아내건만 그래도 마냥 좋다고 졸졸 따라다니는 이 충성?스런 개를 멍청하다고 치부해야할까! 미안한 마음도 없지 않아 있다.

그렇게 벌써 훌쩍 몇 개월이 지나고 강아지였던 개들이 이제 당당히 냄새풍기는 암캐가 되었다.
때가되면 이 섹시한 여자 개들을 차고에 가두어야하는 일이 생겼다.
개들은 번갈아가며 여자임을 알리는 냄새를 풍겼고 이때마다 동네 수캐들은 우리집을 어슬렁거리며 그야말로 침을 흘렸다.

이번에는 스크라피가 차고에 갇힐 때가 되었다.
아이들이 별명지어준 동네 ‘핀헤드’ 라는 검은털의 수캐가 어슬렁대기 시작했다.
‘핀헤드’ 라고 세례명을 받은 이 수캐는 아이들 말에 의하면 미련하기 그지없어 ‘핀헤드’ 라고 했단다.
아침마다 스쿨버스를 기다리는 아이들앞에 이 핀헤드는 항상 나타나서 아이들을 아는체하는 것 까지 좋았지만, 지나가는 차마다 짖어대며 달려드는 이 개는 그야말로 바보스러워 아이들은 놀려댔다.

깜깜하고 답답한 비좁은 차고에서 며칠을 지내야 하는 스크라피가, 어느날 가여워서 이제 며칠 지났으니 괜찮을거라고 나는 차고문을 열어주었다.

스크라피의 뭐 정확한 사생활을 그 누군들 알수있겠는가마는, 사람들은 내가 차고에서 풀어준 그날 핀헤드와 접촉이 있었을 것으로 예상하였다.
그날 핀헤드를 집주위에서 보았다는 증인들이 있다보니 이론은 얼추 성립되었다.

그러니 스크라피의 임신은 개를 풀어준 내 책임이라고 올가미를 쓰게 된 이유가 여기 있었다.

스크라피의 배는 점점 불러졌다.
젖꼭지도 더 불거졌고 걸음도 조금씩 뒤뚱거렸다.
난 단지 개가 (복날이 다가오는 걸 어찌 알고) 점점 살이 찌고 있는거라고 생각했는데 데이빗은 개가 임신한 것 같다고 말했다.
“미련한 것! 임신을 해 오다니... ”
평상시 스크라피를 더 이뻐하며 차별을 두는 데이빗에게, 미련한 것은 프로스티가 아니라 바로 저 스크라피라고 난 투덜거렸다.
아이들은 핀헤드가 아빠라고 주장하며 몇 마리의 새끼를 가졌을까를 점치고 있었다.
핀헤드 주인에게 쫒아가서 우리집 개는 그렇게 함부로 몸을 놀릴 그렇고 그런 개가 아니니 틀림없이 강간을 당한것이라고 책임지라고 해댈까?

스크라피는 날이 갈수록 불러오는 배 때문에 힘이 드는지, 옹색한 자세로 잔디밭에 엉거주춤 앉아있었다.

암컷이라는 것에 동질감을 느낀 나는 만삭이 되어 몸 가누기를 힘들어하는 스크라피를 바라보며 나의 임신때를 생각해냈다. 그리고 개를 측은해했다.
암컷들이면 모두가 치러내야 하는 고통과 감수.



어느날 밤 12시가 넘어 외출에서 돌아왔더니 주미가 현관문을 열고 스크라피가 새끼 두 마리를 낳았다고 했다.
차고에서 새끼 두 마리를 낳은 스크라피가 갗 태어나 꿈틀거리는 쥐처럼 생긴 새끼들을 핥아주고 있었다.
낳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으니 장하기도 하고 대견스럽기도 하고 가엾기도 하고...
30분쯤 후에 스크라피는 또 새끼 한마리를 더 낳았다. 그리고 곧이어 또 한 마리를 낳았다.
비릿한 냄새와 함께, 스크라피는 연신 새끼들을 핥아주느라 바빴다.
한 녀석은 태반이 머리를 감싸 숨을 못 쉬어서 걷어주어 살아났고
한 녀석은 목에 분빗물이 걸려 있는 것을 손가락으로 빼주어 살아났다.
주미는 새끼 낳는 광경을 목격했지만, 나는 보고 싶지 않았다.

다음날이 되어 차고를 열어보니 우리가 자는 사이에 한 마리를 더 낳았는지 다섯 마리가 엄마품에 매달려 젖을 빨고 있었다.
다섯 마리 씩이나 낳느라 얼마나 아프고 힘들었을까!

새끼 한 마리는 검정색이었고 나머지는 연한 갈색이었다.
검정색을 보며 아이들은 핀헤드가 아빠라고 더욱더 확신하였다.

새끼들은 끼잉대는 소리를 하며 엄마젖을 연신히 찾고 있었고 스크라피는 주인을 보고 반가워하면서도 일어나려 하지 않았다.

개들은 새끼들을 보호하느라, 주인일지라도 새끼에게 손을 대면 사정없이 대든다는데, 아이들과 함께 우리는 조심스럽게 새끼에게 다가갔지만, 스크라피는 튀어나온 아랫이빨을 보이면서 웃으며 좋아라 했다.
자신이 낳은 새끼를 마치 자랑스러운 듯,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어하는 듯.
손바닥에 올려놓고 쓰다듬기에도 작고 가냘픈 새끼들이었다.

스크라피는 엄마역할을 무척이나 잘 해냈다.
새끼들 옆에서 떨어지지 않고 젖을 물렸고 식사시간에만 자리를 비웠다.
새끼들은 건강했고 토실토실 살이 붙었다.
배가 홀쭉 줄어든 스크라피는 등뼈가 보이도록 말랐고 여덟 개의 젖만 축 늘어져있었다.
영양분을 젖으로 빨리는 스크라피를 생각해 닭고기도 먹였고 하루에 두 번씩 세 번씩 끼니를 주었지만 여전히 말라있었다.
스크라피는 새끼들에게 젖 물릴 시간이 되면 임무를 하고 또 나름대로 자기시간을 갖는 듯 했다.
첫아이를 낳고 애기 옆에서 떨어지지 못하고 하루종일, 몇달동안 절절 매던 나를 회상하니, 스크라피가 그리 대견하다못해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종종 바닷가로 산책을 나갈때면 스크라피도 데리고 나갔고 돌아오면 스크라피는 곧장 새끼들에게 달려가 냄새맡고 확인했다.



어느 날 주미가 내게 달려와 스크라피에게 큰 일이 생겼다고 알렸다.
젖 하나가 탱탱 부어있고 새끼들에게 젖을 주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젖몸살이었다.
난 이 젖몸살도 앓아봐서 어떤것인지 잘 알고있었다.
유선이 막혀서 젖이 고이고 심하면 속에서 젖이 상하게되어 감염을 일으키기도 하는데, 내 경우에는, 온몸에 고열이 나고, 지독한 두통, 뒷목아픔, 목도 부어 침을 삼킬수도 없으며, 허리는 끊어질 것처럼 아프고 무릎은 시리며, 발끝 손끝 마디마디 아프고 무엇보다도 문제의 젖은 돌덩이처럼 딱딱하여 팔을 올릴수도 없을 정도로 고통스럽다.
그야말로 안아픈 구석이 없을정도로 아프다.

스크라피도 젖몸살이 걸렸나 싶으니 정말 그냥 개 일처럼 스쳐버릴 수가 없었다.
자꾸만 새끼들을 피하는 스크라피를 꽉 잡아 새끼들에게 젖을 대 주고 얼마가 지나자 다행이 통통해진 젖이 많이 줄어들었다.
아픈 것 같지는 않다.

새끼들은 가느다랗게 이빨이 나기 시작했고, 스크라피는 뾰족한 이빨로 빨아대는 새끼들이 힘에 부친 듯 더 이상 젖 주기를 거부했다.
배가 고파서 끼깅대는 새끼들에게 우유를 주기도 했지만 엄마젖을 떼기에는 아직 일렀다.

탄생은 신비로운 기적이다.
가을 햇살이 따사롭게 퍼지는 어느날, 나는 정원 잔디밭에 앉아 스크라피와 새끼 강아지들을 지켜보며 혼잣말을 해 보았다.
제법 비척대며 걷고 지들끼리 장난도 치기 시작한 강아지 새끼들. 그리고 그렇게 건강하게 잘 키워낸 엄마 개 스크라피.
난 처음으로 스크라피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스크라피는 나를 바라보더니 내 품에 폴짝 뛰어 안겼다.

나는 주위에서 엄마젖을 찾고있는 새끼 한마리를 집어올려 스크라피 젖에 물려줬다.
그리고 한 마리씩, 다섯 마리를 모두 데려다 젖을 물게했다
스크라피는 내 품에 안겨 더 이상 거부하지 않고 젖을 빨려줬다.
새끼들은 어지간히 배가 불렀는지 젖꼭지에서 만족스러운 듯 떨어져 나갔다.
스크라피는 여전히 내 무픞에 앉아 있었고 종종 지 새끼들을 핥듯 내 콧잔등을 핥았다.

나는 연신 스크라피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어느새 나는 스크라피를 좋아하게 되어버렸나보다.
녀석! 죽지 말고 오래 살아야 할텐데....
죽으면 많이 보고 싶어 질 테니까.....



(총 : 35 건)
권영진 2004-09-11 오후 8:44:24 삭제
사람이든 말못하는 짐승이든 새생명의 잉태와함께 새로 태어난 간난 새끼들을 보면 인정없던 사람도 저절로 머리가 숙여지고 신비롭다는 생각을 누구나 하는것 같다. 한 마리도 아니고 다섯마리나 태어났으니 얼마나 부자된 느낌이며 강아지 주인인 주미는 얼마나 행복해 할까요? 축하한다고 전해 주세요.....
우리아들 헌규가 새끼들을 보고 싶데요.
어렸을적 부터 헌규는 강아지를 얼마나 좋아 하는지 지금부터 자기는 이다음에 결혼해서 살면은 꼭 큰 강아지들을 기르며 아파트에서 살지 않고 마당이 넓은 시골집에서 살고싶데요...
헌규 2004-09-14 오후 9:08:26 삭제
안녕하세요..신영아줌마.!
강아지가 새끼를 낳았네요.먼저 축하해요!
사진까지보니까 정말 한마리 갖고 싶은 생각이 들어요.
아일랜드에서는 어미가 배가 나왓더니. 귀여운 새끼5마리 낳았네요.
다음에 기회있으면.. 1마리 분양해 주시면 안되요?히히.
그럼안녕히계세요. 햐~정말귀엽다...~
허은혜 2004-10-01 오후 11:09:19 삭제
언니~ 이 글을 읽고 혼자 얼마나 웃었는지 몰라요. 언니 글을 읽으니까 갑자기 엄마 생각이 나네요. 저렇게 작은 스크라피도 엄마 노릇을 하는데 제가 나이가 들어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으면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어요. 어머니는 여자보다 위대하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오늘 조금 더 잘 알게 되었어요. 지금 아기 강아지들 많이 자랐겠죠? 보고싶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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