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번호 67  등록일 : 2004-06-11 오후 8:59:22

차악~
글 : 허신영 ()



"할머니! 내가 죽으면 할머니는 어떻게 할건데? 울꺼야?"

아마도 내 나이 예닐곱살 이었을 때로 기억한다.
나는 할머니를 너무도 좋아해서, 할머니도 나를 너무도 좋아할까를 확인받고 싶어 종종 이런식의 질문을 했었던 것 같다.

"어떡하긴 뭘 어떡하것냐? 멍석에 돌돌 말아서 저 뒷산 공동묘지에 차악~ 묻어야지"
할머니는 "차악~~" 이라는 말에 좀 힘을 주었고 길게 느려빼기도 하였는데 난 할머니의 장난기 머금은 웃음에서 농담이라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그래도 조금은 정말 그럴까? 라고 섭섭해했었다.

"우리 신영이가 죽으면 할매는 우리 신영이 보고자파서 할매도 따라죽지" 라고 말씀하실법도 한데 할머니는 늘 멍석에 말아서 공동묘지에 차악~ 묻어버리겠다고 하신단 말이다.

난 내가 원했던 정답을 듣지 못한 서러움에 눈물이 핑 돌았고, 그럴때마다 눈물이 방울이되어 떨어지기 전에 뒷간 지푸라기벽에서 눈물이 마를때까지 숨어있곤 했다.

"난 우리 할머니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데, 할머니는 좋아해야 할 사람들이 나 빼고도 많이 있으니까 내가 없어도 괜찮을 거야" 라는 혼잣말을 지어내어보면 정말로 서러워서 눈물방울이 마르기는커녕 더 많이 생겨버린적이 사실 더 많았다.

난 정말 한번 죽어보고 싶었다. 할머니가 전혀 슬퍼하지 않고 나를 멍석에 돌돌 말아 뒷산 공동묘지에 차악~ 묻고 아무렇지도 않을까를 확인해보고 싶었다.

아니, 실은, 할머니는 나의 죽음에 정말 슬퍼서 엉엉 우실거라는 확신이 더 컸지만 그렇기에 더욱더 한번만 죽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할머니가 내게 하셨던 무심한 "차악~" 이란말을 후회하고 내게 미안해서 마음아파 하는 것을 보고싶었다.
그런데 한번 죽으면 다시는 살아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할머니! 그러게 왜 나한테 그렇게 말했어? 할머니가 잘못 말했잖아?" 라고 다시 살아나서 할머니에게 큰소리 쳐 사랑을 확인받아야 하건만 다시 살아날 수 없다면 확인할 방법이 없었고 나만 손해일 것 같았다.

이쯤까지 생각하면 상황이 이렇든 저렇든 더욱 우울해지기만 했다.
나는 이차 삼차의 진행과정에서 어쩜 내가 원하는 답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 이후로도 때때로 "내가 죽으면?" 이라고 묻고 했었지만 할머니의 대답은 늘 "차악~~ "이었다.

아마도 난 내가 원하는 답을 포기했던지 더 이상 그런 유치한 질문을 하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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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나를 얼마에 팔 수 있을 것 같아?"
화장실 청소를 하고있는 내게 다가와 주미가 내게 묻는 말이다.
"얼마에 파냐구? 글쎄 한 5유로 (5천원의 가치)면 넉넉하게 받을 것 같구나. 양치질도 하고, 얼굴도 깨끗이 씻고, 옷도 좀 단정하게 입으면 10유로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나는 평소에 늘 하던 잔소리를 기어이 집어넣어 대꾸했다.

"뭐라고 엄마? 5유로? 그것밖에 안받고 날 팔거야?"
"그 정도면 충분하지. 그것으로 뭘 살까.......빵도 사고 우유도 사고...그래도 1유로 정도는 남겠는걸?"
"정말?"
"주미를 팔면서 강아지는 덤으로 끼워서 팔아도 되겠구나"
"엄마.....농담하는 거지????"
나의 장난기 머금은 웃음에서 주미도 내가 뻔한 농담을 하고있다는걸 눈치챘겠으나 가만히 생각해보니 어렸을 때 할머니와 나와의 대화가 불쑥 생각나서 주미가 알지 못하는 웃음을 난 혼자 웃고있었다.

며칠 전, 학교에서 내 준 숙제중에 "유괴범이 나를 유괴했을 때 우리 엄마아빠는 얼마의 가격으로 유괴범과 협상할것인지 그 가격 알아오기"
"국어나 산수에, 종종 추가해서 부모님 말씀 잘듣기 정도의 바른생활이나 잘 가르칠 것이지 뜸금없는 납치될 경우 유괴범과의 협상금액을 알아오라니 별 시답지도 않은 일일세"
난 의례 조금은 무식한 어머니처럼 그렇게 투덜거렸다.

아빠 데이빗은, 주미의 질문에 "전 재산을 팔아서라도 주미를 구해와야지" 라고 말해주었다.
유괴범이 우리의 전 재산보다 더 많은돈을 요구한다면 포기해야 할까? 빚이라도 얻어야하지 않겠는가? 그렇담 빚을 얼마나 얻어야 할까? 딸의 생명과 바꿀 수 있는 금액으로 얼마까지의 빚을 허용할 수 있을까?
이쯤되니 간단히 "가격 정할 수 없음(PRICELESS)" 이라고 정답아닌 정답을 말해주게 되었다.
주미는 이 정도의 대답이면 만족하다는 듯 공책에 답을 적어냈다.
사랑을 확인하고파, 자신을 얼마에 팔수있겠느냐는 얘길 물어봤자 듣기싫은 잔소리를 섞어 5유로니 10유로니로 대답하는 내게서 듣고싶은 정답을 듣기는 틀렸다고 체념하였는지 주미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할머니의 사랑을 확인받고 싶어 "내가 죽으면?" 이라고 묻곤 했었던 어린 나!
엄마의 사랑을 확인받고 싶어 "나를 얼마에 팔것인데?" 라고 묻는 나의 딸!

"차악~" 이라는 대답에 마냥 섭섭하여 뒷간 지푸라기벽에서 훌쩍대던 나.
사실 주미도 어디 뒤뜰 구석에서 나몰래 서러움을 달랬는지도 모를 일이다.

할머니의 "차악~" 이라는 대답에 서러워하였으면서도 난 왜 내 딸에게 5천원정도에 팔수있겠다는 농담을 하게되었는지 모를일이다. 이것이 바로 언어적 관습의 세습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담 사랑도 어쩜 세습적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랑은 의사소통으로써 표출되어 전달된다.
내가 말하는 의사소통은 언어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몸짓, 눈짓, 행동, 인상, 표정, 태도를 통하여 전달되는 느낌을 말하며 언어는 불과 아주 미미한 부분에 속할 뿐이다.
예를들어서 잔뜩 짜증난 얼굴로 사랑한다고 고백한다면 그 고백을 믿을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비록 사랑을 언어로 표현하지 않더라도 사랑한다면 몸의 의사를 통하여 충분히 전달된다.
나는 이 의사소통을 언어의 표현보다 더 확신하는바, 아마 할머니도 나처럼 굳이 간질거리는 말로써 표현하고 싶지 않아 짓궂은 장난으로 사랑을 표현하였던 것 같다.

내가 지금도 할머니를 그리워하는 이유는 이 의사소통으로 사랑을 확신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언어로 표현되는 사랑은, 몸의 의사를 거쳐 자연스럽게 나와지게 되는 것을....
그렇기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나와야 할것이 나오지 않는다 싶으면, 조금씩 의심하고, 그래서 종종 확인받아보고 싶어 안달한다.
사랑의 고백은 때론 듣기만 해도 충치가 생길정도의 달콤한 농도로 간질거려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난 내가 살던 뒷마당 장독 속에서 잘 곰삭은 무장아찌같은, 짭짜름하기도, 시큼하기도, 텁터름하기도 한 시골 맛 같은, 그래서 한번 입에 대면 싫은 듯 하면서도 "차악~" 달라붙는 질리지 않는 사랑표현이 더 그립다.
"차악~"
할머니의 "차악~" 이라는 사랑의 의사표현이 다시 듣고싶은 그런 날이다.


(총 : 25 건)
김쌤 2004-06-30 오전 11:34:37 삭제
몇년전 돌아가신 외할머니 생각이나서, 너무 그리워서 눈물이 핑 돕니다.
가난했던 외할머니집에서 몰래 훔쳐먹던 흑설탕의 향기도 나는듯 하구요.
주름진볼로 코흘리게 어린 손녀볼을 닳아 없어질듯이 마구 부비시며 예뻐해주시던...
외할머니의 사랑을 한번도 의심해본적이 없었는데,
저도 너무너무 사랑한다는 확신을 외할머니에게 주지 못한것 같아 이제와서 후회스럽습니다.
할머니! 울 할머니! 사랑합니다.

간질거리는 말(^^)이든 짓궂은 장난의 애정표현이든 사랑을 표현할수 있을때 후회가 없도록 맘껏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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