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준비 시간이 언제나 그러하듯 맛의 수준을 떠나
최소한 한국식 밥을 먹는다는 큰 사명감으로 밥을 짓는다.
아이들은 밥 보다 더 많있는걸 대라하면 신나겠지만
난 밥심이다. 하루에 한끼는 무슨일이 있어도 입에 쌀이 들어가야 정신이 들고
뭔지모를 욕구가 채워지는 느낌이다.
어르신들이 여행가서 음식땜에 고생하고, 근사한 레스토랑에 모시고 가도 김치
나 단무지를 찾는 그 심정이 이젠 절실히 와닿는 나이가 된걸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시간이 흐를수록 맛에 인이 박히듯
살아온 시간동안 만큼이나 인이박힌 나만의 틀.
세상과 사람을 평가하고 판단하는 이 작은 잣대는
달갑지 않게 몸에 배여 떨쳐지지를 않는다.
김치야 숙성의 과정을 거쳐 때로는 명품 김치도 되지만
난 이 나이 먹도록 숙성되어 오기보단
점점 수용의 폭이 좁아져 왔음을 느낀다.
가끔 애들을 혼낼때 왜 안하는데? 하고 물으면 아이들은 그냥 하기 싫어 하고 별
다른 이유없음을 당당히 밝힌다.
나도 어쩔땐 그냥 싫다.
성숙한 지성인 답게 내가 먼저 베풀어야지.
저 꼴보기 싫은 새라 엄마한테 그래도 오늘은 눈이라도 맞춰봐야지 했다가도
내가 왜? 하며 그냥 싫어진다.
자동으로 먹는 나이만큼 내면의 깊이도 더해지는줄 알았다.
머리가 하얘지면 모두들 동화속에 나오는 허리 풍성한 호호할머니가 되는 줄 알
았는데.... 세상에 공짜가 어디있나?
오랜 숙성의 과정을 통해 인내하고 부지런히 자신을 다스려야 그 댓가로
나이값을 제대로 하는 사람이 될수 있음을
갑자기 밥을 하다 다시금 깨닫는다.
문득 부엌창을 내다보니 하늘이 온통 석양에 물들어 핑크빛이다.
세상에,,,, 이렇게 멋진 하늘을 올려다보며 난 무심코 얼큰한 찌개를 떠올리고
소주한잔에 골뱅이 무침을 구름속에 그려본다.
침이 꼴까닥....
애들은 밖에서 저 하늘을 보며 뭘 떠올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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